목록경계 (2)
우리도 씁니다
저 멀리 있을 땐 겨우 얕은 일렁임 따위였는데, 뭍에 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있으면 저것은 모래사장의 무언가를 닦아내는 것인지, 되려 모래로 더럽혀 지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파도가 거셀수록 바다와 모래의 경계는 두텁게 혼탁해진다. 이것은 경계의 당연한 속성이다. 펜 촉에 힘을 주어 선을 그을 수록 그 흔적은 깊게 남는다. 종이를 가로지르는 횡축(橫軸)의 짙은 선은 공간을 분리한다. 지평선은 땅과 하늘을 분리한다. 경계는 구별짓기의 결과이며 분리의 시작이다. 명확함은 모호함 보다 인기있다. 미덕으로 여겨지기도한다. 이도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커피는 팔리지도, 메뉴판에 적히지도 않는다. 부먹찍먹만큼의 논란을 야기하진 않겠지만, 은밀한 취향을 고백하자면 한참 식은 따뜻한 커피와, 얼음이 다녹아 컵..
소복히 엉기며 세상의 모든 색을 지운다. 파란 하늘마저 눈의 기세가 익숙한 듯 제 빛을 사위고, 세상은 온통 하얗다. 눈은 하늘과 땅, 그 사이 모든 구별을 거부한다. 온갖 경계에 달라붙어 그것을 희미하게 만든다. 길 가의 창에 비친 내 어깨를 보니, 시린 손에 꼭 쥔 우산이 무색하다. 진작에, 내 코트도 그 경계를 잃고 있다. 이게 차가운 건지, 포근한 건지. 어깨에 갈앉은 눈을 보다 코 끝이 시큰해졌다. 내일이면 녹아 모두 제 빛을 되찾더라도, 나만은 이대로 지워지면 좋겠다. 네게 가닿지 않은 나의 사랑에도 무겁게 엉겨붙어라. 대답을 듣지 못해, 독백이 된 마음들에도 재빨리 달라붙어라. 뒤엉키고 떨어져, 누구의 발이든 밟히고 깨져라. 녹아라. 멀리 흘러라. 그 와중에는 네가 아닌 눈 탓을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