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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별 보러 가자 본문

전규섭

아니, 별 보러 가자

우리도 씁니다 2021. 1. 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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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야경을 좋아한다. 이것이 남들과 다른, 특이한 취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산, 북악 스카이웨이 등 고도가 조금 높은 곳들은 주로 밤거리의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로서, 네온과 자동차 전조등, 건물의 등과 같은 불빛들을 관조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둠 속에서 태어난 빛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은 소리를 만든다. 사람이 내는 소리와 사람이 만드는 온갖 소리들로, 밝은 곳은 침묵할 줄 모른다. 침묵은 살아있는 것들의 성질이 아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크고 작은 소리들을 만든다. 살아있는 것들이 침묵할 때는, 소멸을 불사하더라도 던지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들의 침묵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할 당위이기도 하다. 큰 소리의 농성보다, 음성 없는 단식시위가 더 강렬하다. 어떤 마음이 그를 ‘침묵’하게 했을까. 우린 소리가 아닌 침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야경을 보는 일은 생명의 특징인 소리와 빛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를 관조하는 일이다. 저 멀리 점처럼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내는 소리는 바람에 섞여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한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먼 곳에서 오는 그 빛들의 소리를 찾으려 애쓴다. 높은 건물들이 밝히는 빛들을 보고 있으면 창문 너머 보일 듯 말듯하는 저곳에선 어떤 소리들이 생동하고 있을지 상상한다. 청취의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귀 기울이는 그 과정이 즐거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명소가 되지 못하겠지만, 작은 동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밤의 풍경을 보는 일도 즐겁다. 낮은 고도에서 야산 둔턱을 올려보며, 그 중턱에 있는 달동네에서 시작하는 빛들을 보는 일은 또 다른 감상을 준다. 특히 산과 하늘의 경계가 어둠으로 흐려지는 밤이면, 야산의 모습은 하늘의 일부가 되고, 달동네의 빛들은 별무리의 일부가 된다. 달동네에 뜬 별들을 보며 진짜 별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2. 

나는 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 고등학교는 뒤에 야산과 앞에 농원과 개천을 둔 외진 곳에 있었다. 외진 곳은 밤이 되면 생명의 출입이 적다. 빛과 소리가 적은 곳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빛과 소리가 적을 때, 우리는 본디 있던 빛을 발견할 수 있다. 별이다. 모든 불이 꺼진 교정에서 별빛은 밝게, 정말 밝게도 운동장을 비추고 나와 친구의 얼굴을 비췄다. 기숙사에 살던 나는 야간 학습 후, 단짝과의 잠깐의 밀어를 위해서는 교정에 숨어 사감 선생님의 눈을 벗어나야만 했다. 단짝과 붙어 앉아 그 눈을 피하던 짧은 침묵은 별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나름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하루 종일 책을 들여다보며 머릿속을 채우기 분주했던 마음을 찬찬히 정리할 시간이었기도 했다. 가만히 별을 보고 있으면 반짝반짝 일렁이는 별빛에 마음도 일렁이곤 했다. 단짝을 향한 마음이었을지, 풋사랑의 낭만이었을지 구별할 길은 없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대성리의 펜션에서나 춘천의 친구 집을 갈 때 별을 볼 수 있었다. 별을 보는 빈도가, ‘매일’에서 ‘연례행사’로 줄었다. 기본적으로 그리움은 상실에서 비롯된다. 나의 것이라 여겨지는 대상에게 그리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이 멀어질 때, 그 존재에 가 닿을 수 없을 때, 우리는 그리움을 느낀다. 매일 별을 보던 일상을 잃고 나서, 별 보는 일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막상 일상이었을 때는 큰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았지만, 가 닿을 수 없음은 보고 싶어 애달픈 마음이 되었다. 단짝과, 혹은 친구들과 별빛에 기대어 나누던 대화가 낭만이 되었고, 서울살이를 하게 된 내게, 별을 볼 낭만의 기회는 그리운 일이 되었다. 

 

 

 

3.

 어린아이들이 멜론을 처음 먹고는 ‘이거 메로나 맛이 나네!’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메로나가 멜론의 맛을 따서 만든 가공식품이라는 것을 아는 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 원본과 복제품 사이의 구분을 잃어가는 세상을 보게 되었다. 시뮬라크르. 시뮬라크르가 떠올랐다. 플라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가짜 복제물. 원본을 잃고 복사본들 만이 가득 찬 세상. 건물 옥상에 지어진 작은 하늘공원이 숲을 대체하고, 직접 골라주는 선물은 기프티콘이 대체한다. 어플로 성형된 얼굴이 수수한 민낯의 얼굴을 대체하고,  과일보다 달달한 과일주스가 과일을 대체한다. 자극적인 시뮬라크르는 원본을 읽을 눈을 멀게 한다. 원본인지 아닌지 뭐가 중요하냐 이야기한다. 실제로 플라톤이 제시한 일종의 부정적 개념이었던 시뮬라크르는 들뢰즈에 의해 긍정된다. 들뢰즈는 이데아와 시뮬라크르들의 구분은 의미 없으며, 어느 것도 원본이 될 수도, 복사본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 사상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 포스트모더니즘과 이어진다.

 (참고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30388&cid=60657&categoryId=60657)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원본이 새롭게 대체되는 것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더 낫게 계발되기에 긍정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원본의 가치를 정의하고 어떤 것을 남겨두고 계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중요하다. 멜론을 메로나 맛으로 평생 생각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야경을 보는 일도, 별을 보는 일도 즐겁다. 하지만, 별 보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별 보는 것 대신 야경을 보는 일을 택하고 싶진 않다. 때론, 쉬운 야경 말고 어려운 별을 보러 가자 이야기하고 싶다. 

 

 

 

 

by. 전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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