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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섭

가난

우리도 씁니다 2021. 3. 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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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는 사람만 알겠지만 나는 곡을 쓰고, 노래한다. 그것을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버젓한 이름이 있음에도 무명을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만 알고 싶은 가수’여서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수년 전, 음악을 시작해야겠다 마음을 먹은 후로 오픈마이크1) 무대에 종종 올랐다. 공연장을 대관하기에는 티켓 파워가 약했으니, 무대에 서기 위해선 무료로 무대에 설 기회는 주되 페이는 주지 않는 무대만이 당시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나도 몇 번 무대에 서기도 했던 홍대의 U카페에 손님으로 찾아간 날이었다. 평일 저녁이라 해도, 제법 북적이던 기억과 달리,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나와 일행만이 유일한 손님인 모양이 되었다. 두 팀의 오픈마이크가 예정되어있던 날이었고, 무명이라는 같은 병에 걸린 그들에게서 내가 보였다. 나도 관객 없는 무대에서 공연을 해본 적도 있기에, 그들의 겪을 민망함을 덜어주고 싶었다. 대화를 멈추고 자세를 고쳐 앉고 귀를 기울였다. 동병상련()이라는 네 글자가 머리에 맴돌았다.

 

2.

먼저 무대를 마친 가수는 편한 얼굴로 맥주 한 잔을 시켜 객석에 자리를 잡았다. 공연을 마친 사람에게 쉽게 볼 수 있는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서로 초면이었겠지만, 무대를 공유했으니 이젠 동료라 부를 수도 있을 두번째 가수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키에 굽은 어깨로 카페에 들어왔던 두번째 가수는 여전히 굽은 어깨에 기타를 둘러메고 한참 뜸을 들였다. 동료의 맥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원래 공연하기 전에 꼭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노래 부르는데, 오늘은 돈이 조금 모자라서 못 마시고 올라왔어요. 이런 적이 처음이라 노래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본인 딴에는, 혹시 모를 실수를 위한 연막이었을지 모르겠다. 

‘제가 오늘 감기에 걸려서, 혹시나 실수하더라도 양해 해주세요.’ 와 같이 미리 던지는 변명.

 

카페 사장님이 멀리서 툭 한마디 던졌다.

‘00아, 내려오면 맥주한잔 줄게~’

 

3.

국립 국어원에 의하면, 가난의 어원은 간난(艱難)에서 온 것이라 추정한다. 간난은 어려울 간(艱)에 어려울 난()이라는 한자를 쓰는데. 간난은 ‘몹시 힘들고 고생스러움’이라는 뜻이다.2)

어려서부터,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유감스럽게도 그 말로 인해, 많은 이들은 가난이 부끄러울 수 있다는 전제를 학습한다. 가난이 어렵고 어려운 것이지만, 그것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인과는 없다. 시대에 따라 상대적이니 절대적이니 여러 기준으로 가난을 구분하지만, 모두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쓴다.

물론, 어렵고 어려운 상태를 벗어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자신의 힘이든, 타인의 도움을 통해서든 모두가 그 어려운 상태를 벗어나길 바란다. 하지만, 그 이유가 부끄럽기 때문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이상적인 것일까.

검색사이트에 ‘가난’을 검색하면, ‘가난해서 우울해진다.’는 고민의 글들이 눈에 띈다. 나조차도 줄어드는 잔고를 보고 있자면 우울해지는 것은 물론, 내일과 먼 내일의 걱정까지 끌어 모아 밤을 지샌다. 

직장 선택에 있어 ‘안정적’인지에 대한 여부가 높은 우선 순위를 차지한다는 자료를 통해, 불안한 경제상황 속 많은 이들이 고정적 수입에서 오는 안정감을 추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다른 분야의 경제는 잠시 차치하더라도, 공연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문화예술계가 수익성 보다 예술적 가치의 실현 등과 같은 다른 가치를 조금 더 우선하여 추구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다른 직군에 비해 평균소득이 높지 않은 분야인데, 음악 분야의 예를 들면 주 수입원 중 하나인 오프라인 공연 등이 위축되며 많은 회사와 예술가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잘 알고 지내던 대표님들은 회사 문을 닫고 부업으로 고정비용을 메꾸고 계시고, 그나마도 어려운 분들은 폐업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듣는다. 잠시 활동을 접고 아르바이트에 전념하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는 전부 헤아리기도 어렵다.

전업 예술인으로 뛰어들기란, 자발적인 경제적 가난함에 대한 동의라고 느껴진다. 다른 걸 선택했을 때, 잘 되리란 보장도 없음에도, 예술을 전업으로 삼았을 때 겪을 경제적 가난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예술계의 배고픔은 사실 풍유를 넘어선 실재이다.

 

4. 

앞서 언급한 이야기의 두번째 무대에 선 가수의 일상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날의 현금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고, 그 달에 비싼 장비를 사느라 생활비를 써버렸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사람의 가난을 확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를 보는 나의 마음은 다른 의미로 가난했다.

어쩌면, 경제적 가난이 부끄러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첨언이 실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나도 어떠한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부끄러움은 예술이라는 거창한 것을 하겠노라 하면서도, 예술에 대한 마음과 가난을 감수할 용기 사이의 무게를 비교하는 데 있다. 나의 것을 표현해야만 하는, 예술적 인간(Homo artex)으로서가 아니라, 가난할 용기가 있다면 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 나의 일을 생각하는 데 나의 부끄러움이 있다. 

이 부끄러움이 제법 고되고 어려우니, 나의 가난함을 면하기가 쉽지 않다.

 


 

1.  open mike : (클럽에서 누구나 노래·장기 자랑 등을 할 수 있는) 마이크 개방 시간. (옥스퍼드 영어사전)

2.  ‘가난’의 어원 (출처 : 국립 국어원 https://www.korean.go.kr/front/mcfaq/mcfaqView.do?mn_id=217&mcfaq_seq=8074)

 

 

 

 

 

by. 전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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