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씁니다
취했네 [1월 : 술에 대하여] 본문
[전진희 – 취했네 https://www.youtube.com/watch?v=bhaK9JQsn-o – 들으며 읽어주세요.]
-띵
‘다드ㄹ잘 들ㅇㅓ갓ㄴㅑ’
양 팔을 친구들에게 붙잡혀 끌려다니다, 결국은 택시에 태워져 집에 들어간 녀석에게 제일 먼저연락이 왔다. 동행을 하나 붙여놨으니 집에는 들어가겠지 싶었는데 되려 받은 걱정에 웃음이 났다.
누구 하나 예외없이, 한겨울 동네 꼬마들 같이 얼굴이 발그레하다. 주말 저녁에 간신히 허락되는 여유에 급하게 들이부은 잔들 때문이긴 하지만, 매일을 함께 보내던 대학시절이 저물고 거진 일년 만에 만난 반가움이 벌겋게 드러난 것이기도 했다. 벌개진 얼굴들을, 거진 감긴 눈으로 바라보다 자리를 파했다.
동기들과, 선배들과 하루가 멀게 드나들던 술집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건, 우리의 일상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뜻이겠지.
다음 날이면 여지없이 목이 쉴 만큼 시끌벅적한 술집의 소음은 여전했다. 제법 잔잔한 복학생의 일상에는 없던 소음에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입구에 들어서서 테이블에 앉는 그 짧은 순간에 그 소음은 익숙한 것임을 몸이 기억해 낸다.
익숙한 기본 안주에, 익숙한 메뉴들. 닳고 닳은 우리들의 어제에 대한 이야기로 채우는 빈 잔은 쉽게 채워졌고 비워졌다. 빈 병의 수가 많아질수록 시제는 오늘로 가까워졌다. 술자리의 마지막은 아득한 내일에 대한 고민이라는 매듭으로 마무리가 된다. 결자해지라 했지만, 이야기를 꺼낸 누구도 풀지 못한 채 자리를 파했다.
두 명은 각자의 작은 고시원 방으로, 한명은 직장 기숙사로, 대학을 마치지 못한 나는 학교 앞 자취방으로 돌아간다. 월요병의 발병은 주일 밤에 시작되기에, 시간이 늦을수록 직장인 친구의 텐션이 떨어져갔다. 늘 그렇듯, 조만간 다시보자는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든다.
홀로 남겨졌다.
관성처럼, 평소와 같이.
모호하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끝없는 무질서로 회귀하려는 자연의 법칙같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를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혹, 술
때문이었을까.
스무 살이 되고,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모호해졌다. 꿈은 내가 다가가는 것보다 빠르게 멀어지고, 같이 달아나버린 잠은 맥주 한 캔을 빌려야 청할 수 있었다.
취해서야 꿀 수 있던 꿈은 역시 현실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이게 다, 늘 취해있었기 때문일까.
내일은 취하지 말아야겠다.
by. 전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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