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혐오 (2)
우리도 씁니다
어린 시절 한문을 공부하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다소(多少)’였다. 대소(大小), 장단(長短), 상하(上下), 좌우(左右) 등 단순히 상반되는 두 한자의 나열과 달리, ‘다소’의 활용 예시들은 부사였다. 아쉽게도 언어적 탐구 욕구가 수학과 같은 분야의 그것보다 작았기에, ‘다소’는 일상 속 언어 활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됐을 뿐이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다.’ 몇 년 사이에 가장 눈에 띄고, 나 역시 자주 선택하는 표현이 되었다. 어떤 분야에 조금이라도 먼저 발을 집어넣은 이들의 말. 이때 ‘다소’는 ‘어느 정도’로 대체되곤 한다. 그리고 시작에 앞서 불안한 누군가는 “그래서 그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인데?”라고 재차 묻는다. 아직 전문가가 아닌 선발(先發)자는 모든 ..
그러니 말하자면 ‘우산 빌런’이다. 아, 좀 더 정확히는 ‘장(長)우산 빌런’이 맞겠다. 팔을 내리고 우산을, 그것도 장우산을 가로로 들고 다니는 이들. 물먹은 우산이 행여 ‘남에게 닿을까.’, ‘나에게 닿을까.’ 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데, 그 사이에서 굳이 또 우산을 가로로 들고 자신감 있게 팔을 휘젓는다.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위험하기까지. 덕분에 탈 수 있던 열차 하나를 놓친 적도 있다. ‘왜 저럴까.’, 생기는 불가피한 의문. 이어진 가설, 혹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위협을 가하려는 무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일까. 썩 좋지 않은 그들의 모습과 내 기억들로 구축된 확증편향일지라도, 영역 확장의 욕망이라는 기반을 가지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장우산의 사용 빈도와 나이는 비례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