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간 (3)
우리도 씁니다
1. 시간이 없었다. 마지막 알람을 듣고 눈살을 찡그리며 10시 상영 영화는 취소했다. 밤만 되면 안 되던 것들이 가능해지는 환상의 늪에 빠진다. 신음, 그리고 한숨. 후회와 함께하는 또 다른 아침이었다. 후회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10시 영화를 본다면 다음 영화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으니, 같은 영화를 근처 다른 극장에서 보고 넘어가면 전날 계획한 ‘완벽한 일정’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고민 속에서 그렇게 20분을 또 누워있었다는 것이다. “오케이. 10시 반쯤 상영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핸드폰 화면을 켰다. 10시 35분에 상영하는 곳을 발견했다. 예매, 10분이 또 지나있었다. 샤워한 뒤 바로 밥솥을 열었지만, 밥솥은 어제부터 식어있었다. 덕분에 땀이 나..
바람이 분다. 이렇다 할 방법없이 바람을 맞는다. 주로 무해하고 때론 기분이 좋기도 하니 별 말 없이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갑작스레 부는 바람을 맨몸으로 막아낼 방법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큰 저항 없이 바람은 우리를 스치고, 우리는 바람을 겪어낸다. 시간은 이런 바람 같다. 아무 저항감 없이 스쳐가는 바람도 수많은 겹을 덧대어 돌마저 깎는다. 의식해야 겨우 느낄 수 있는 시간의 흐름도, 나를 스치며 어제의 기억을 깎아낸다. 돌이 풍화에 깎이듯, 우리의 마음은 시간이 깎는다. ‘시간이 멈춘 듯’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이라는 약은 확인되지 않은 길거리 장수에게 산 것인지,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스님이 준 답이었나. ‘시간은 약이지만,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겐 그 시간..
우리가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변화’라는 현상에서 기인한다. 한 철학자의 말처럼 ‘생각’이라는 ‘감각’이 ‘존재’를 보장하듯, 우리가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감각 기관을 통해 변화를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가 클수록, 다시 말해 감각이 영향을 받을수록 존재를 더 확실히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변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시간’과 ‘공간’이다. 물리적으로 접근했을 때 이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 이론적인 측면을 제외하고도, 시간과 공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변화’라는 것을 필두로 ‘존재’에 대한 담론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필수적인 ‘시간’과 ‘공간’은 존재 인식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된다. 자극을 넘어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