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핸드폰 (2)
우리도 씁니다
“핸드폰 앞자리가 ‘010’이 아닌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가 봐.” 그녀가 말했다. “그럼 ‘투지폰’을 쓴다는 거 아니야? 안 불편한가?” 내가 반응했다. “불편해도 쓰는 거면, 왜 쓰는 거 같아?” 또래 친구들보다 늦게 핸드폰을 샀던 게 생각났다. 돌이켜보면 그 전까지 내가 불편한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연락이 안 될 때마다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불편했을 뿐.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젠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메신저들이 누군가에겐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긴, 본인은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 “그냥 쓰던 걸 계속 쓰고 싶다는 건가.” “그렇지. 일종의 관성처럼. 그리고 핸드폰 바꾸는 것보다 번호 바꾸는 게 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해.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좀 더 그..
0.1 어느 알코올 치료센터의 일화 하나. 어느 날 탕비실 선반에서 맥주잔이 발견됐다. 그러자 환자들은 조심스럽게 서로 어떤 맥주를 좋아했는지 이야기했다. 큰 잔에 담은 에일, 도수 높은 라거 등등. 환자들은 추억에 빠졌다. 따가운 탄산이 목을 간질이는 느낌, 에탄올이 위벽에 스르륵 흡수되는 느낌, 침울하고 나른했던 느낌. 그러자 그들 사이에서 불길한 징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0.2 중독은 뇌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환자들 사이에서 ‘치어스 Cheers’라고 장난치는 것도 위험하다. 깊게 남은 중독의 흔적은 작은 단서에도 꿈틀거리니까. 작은 단서에도 꿈틀거리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맥주잔처럼 이미지 하나가 위험하다. 내 눈에 스치는 간판, 게임, 기사 제목, 버스 옆면에 붙은 광고,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