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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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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염증이 떠들썩해지기 이전엔 찜질방을 즐겨갔다. 다른 곳보다, 목욕탕 내에 있는 습식사우나를 좋아했다. 습식사우나 안에서는 땀과 분무가 섞여 오래있지 않아도, 땀에 흠뻑 젖은 것 같은 꼴이 된다. 그 성분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할지언정, 많은 땀을 흘렸을 때 느끼는 뿌듯함을 느끼는데는 큰 차이가 없다. 몸에 맺힌 물방울이 둘 중 어느 것인지 보다 나의 만족감이 더 중요했다. 사우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 효능에 대한 공감과 필요 보단, 흠뻑 땀을 흘렸다는 효용감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명하게도, 우리는 (특히 나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누가보더라도 나은 대안이 있더라도,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해되지 않는 선택을 할지라도 ‘나의 효용감’ 때문이라는 이유를 붙이면, 그건 시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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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히 엉기며 세상의 모든 색을 지운다. 파란 하늘마저 눈의 기세가 익숙한 듯 제 빛을 사위고, 세상은 온통 하얗다. 눈은 하늘과 땅, 그 사이 모든 구별을 거부한다. 온갖 경계에 달라붙어 그것을 희미하게 만든다. 길 가의 창에 비친 내 어깨를 보니, 시린 손에 꼭 쥔 우산이 무색하다. 진작에, 내 코트도 그 경계를 잃고 있다. 이게 차가운 건지, 포근한 건지. 어깨에 갈앉은 눈을 보다 코 끝이 시큰해졌다. 내일이면 녹아 모두 제 빛을 되찾더라도, 나만은 이대로 지워지면 좋겠다. 네게 가닿지 않은 나의 사랑에도 무겁게 엉겨붙어라. 대답을 듣지 못해, 독백이 된 마음들에도 재빨리 달라붙어라. 뒤엉키고 떨어져, 누구의 발이든 밟히고 깨져라. 녹아라. 멀리 흘러라. 그 와중에는 네가 아닌 눈 탓을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