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겨울 (2)
우리도 씁니다
소복히 엉기며 세상의 모든 색을 지운다. 파란 하늘마저 눈의 기세가 익숙한 듯 제 빛을 사위고, 세상은 온통 하얗다. 눈은 하늘과 땅, 그 사이 모든 구별을 거부한다. 온갖 경계에 달라붙어 그것을 희미하게 만든다. 길 가의 창에 비친 내 어깨를 보니, 시린 손에 꼭 쥔 우산이 무색하다. 진작에, 내 코트도 그 경계를 잃고 있다. 이게 차가운 건지, 포근한 건지. 어깨에 갈앉은 눈을 보다 코 끝이 시큰해졌다. 내일이면 녹아 모두 제 빛을 되찾더라도, 나만은 이대로 지워지면 좋겠다. 네게 가닿지 않은 나의 사랑에도 무겁게 엉겨붙어라. 대답을 듣지 못해, 독백이 된 마음들에도 재빨리 달라붙어라. 뒤엉키고 떨어져, 누구의 발이든 밟히고 깨져라. 녹아라. 멀리 흘러라. 그 와중에는 네가 아닌 눈 탓을 할 테니까...
11월이 손을 흔들며 지나가고 12월에 접어들자, 한 점의 온기 없는 바람이 겨울의 도착을 알린다. 서로를 채찍질하던 잎을 잃은 나무들은 조용히 몸을 흔들고 태양의 마지막 햇빛 웅덩이가 증발하며 도시는 어둠에 몸을 담근다. 그러자 어느새 9시. 막 퇴근한 그녀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다. 아이스크림 가게 앞의 실외 배너가 쓰러져있고 도망칠 수 없는 나무처럼 가게들이 우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게는 없다. 녹아있던 땅과 가게는 다시 얼기 시작했다. 샅바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다시 우리를 희롱한다. 바이러스가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거라고 생각했지, 경제에 린치를 가할 줄은 몰랐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했지..